25년만에 다시 찾은 파리에서 4박 5일 (3) 베르사이유 궁전( Palace of Versailles)
2017년 5월 7일~ 5월 11일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고
오후엔 에펠탑과 몽마르뜨를 보고
개선문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는 것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파리 시내에서 떨어진 4존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떻게 갈까 생각 끝에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가기로 했다.
오늘도 신나고 행복한 하루가 될것이다.
요렇게 신나게 웃을때는 잠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종점인 Pont de Sevres에서 내려 출구로 나와서
171번 버스를 타고 30여분 후에 종점에서 내리면 보인다.
화려함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태양 왕 이라고도 불리는 루이 14세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1662년 부터 1715년 까지 50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지어진 궁전이다.
아침일찍 갔는데도 줄이 길다.
이미 표를 산 사람들이 서는 줄이라고는 하는데 너무 길어서
맞는 줄에 서있는 것인지 남편이 확인하러 간사이에
나는 남편 사진을 찍어주던 중국아줌마의 뒷걸음에 걸려서 꽈당~ 하고 넘어졌다.
베르사이유 광장에 큰 대 자로 뻗어서 남편을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듣고 남편은 놀라서 달려오고 경비원도 오고
중국부부도 놀라고.
어찌나 아픈지 잠시 일어나지도 못하겠고
손에서는 피가 나고.
그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뼈가 부러졌나?
뼈가 부러졌으면 어떻게 하지? 여행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말로 천만다행히 생각보다 많이 다치지 않았다.
뼈도 괜찮고 피가 나서 놀랐던 손도 알고보니 손가락 피부가 벗겨져서 피가 나오는 것 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요즘 왜이리 잘 넘어지는지
몸이 둔하기 때문일 것이다.
3년 동안 거의 13킬로 정도 쪘으니...
우여곡절 끝에 말로만 듣던 베르사이유 궁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왕실 예배당
루이 14세의 죽음을 5년 앞두고 1710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완공된 예배당은
흰 대리석과 황금빛이 조화를 이루고
아래 층은 관리들과 귀족들을 위한 예배당이고
이층은 왕족만을 위한 예배당으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루이 14세는 매일 새벽미사에 참석을 하였단다.
천장의 그림들은 구약, 신약의 내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고
둥근 천정에는 성부, 성자와 성령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왕의 아파트는 왕과 왕비의 주거공간과
헤라클래스 방을 비롯한 여러 방들과 거울의 방으로 구성된 리셉션 장소로 구분된다.
헤라클래스 방은 왕실 예배당이 완성되기 전 까지는 왕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방의 맞은편 벽에 '시몬 집 에서의 만찬' 이라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향료로 닦고 있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있다.
전쟁의 신이라는 마르스의 방이다.
궁전내에서 화려함의 절정을 이룬다는 거울의 방도 있다
주로 궁정축제와 중요한 행사들이 열리거나 주요 외국사신들을 접대했던 곳으로
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던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방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을까?
정신사나워서...
마리 앙뜨와네트가 사용하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는
왕비의 침실이 있는 2층 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막아 놓아서 올라갈 수 없다
창문으로 정원의 모습이 조금 보인다.
잘 조성된 베르사이유 정원도 무척 아름답긴 하겠지만
파리 뮤지엄 패스로 입장이 안되어 따로 돈을 내야 하고 오후의 일정도 있어서
정원입구에서 사진 한 장 찍고 과감히 포기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나오면서 아까 넘어졌던 순간을 재연하며 웃을 수 있었고
크게 다치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개인적인 나의 생각으로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별로였다!!!
시간이 일정이 충분하다면 모르겠지만 일부러 많은 시간 들여서 올정도는 아닌 것 같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음 목적지인 에펠탑을 향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