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걷고 또 걸었다 (3) 한양도성길 1코스
2019년 5월
남편은 오늘 창의문에서 시작해서 북악산을 거쳐 혜화문까지 한양도성길 1코스를 걷는다.
1.21 사태 소나무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 군부채 김신조 등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면서 우리 군경과 교전 중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다
나에겐 악! 소리날 것 같은 길이다.
4대 문 중의 북쪽 대문인 숙정문은 위키백과에 의하면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한양도성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아다.
창의문에서 북악산~혜화문까지 이어진 한양도성 1 코스 후에
낙산 성곽길로 내려왔다.
국수를 좋아하는 남편은 점심으로는 월남 냉국수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서울 문묘와 성균관로~~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한국민족 문화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자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훌륭한 유학자들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하는 곳이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1398년 (태조 7년)에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 규모는 대성전과 명륜당을 비롯하여 96칸에 달하였다.
화재와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1601년(선조 34) 중건 공사에 착수하여 여러 곳을 재건하였고 새로운 건물들이 건립되었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소의 역할을 담담하였지만
조선 말기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1953년에 성균관 대학교가 종합대학이 되면서 1963년 부터 성균관대학교와 성균관이 분리되었다.
사직단은 조선 시대, 국가에서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 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남편은 종로도서관에 가서
구내식당에서 저녁도 사먹었다. ㅎㅎㅎ
서울시내는 다리만 튼튼하면 많은 돈 들이지 않고도 먹을 것, 볼 것이 많다.
종일 걷고 어두컴컴 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남편 혼자 다니길 참 잘했다.
나도 같이 갔으면 아마 절반도 못 걷고 힘들다고 난리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