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to Remember

서울에서 7박 8일 (3) 수원 화성행궁 본문

살아가는 이야기/2019년도 이야기

서울에서 7박 8일 (3) 수원 화성행궁

날미 2019. 11. 27. 15:51

 

2019년 10월 22일

 

수원화성과 함께 수원 화성행궁을 보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수원화성을 돌고 화성행궁 가는 길 공원에  커다란 정조대왕 상이 있다.

 

 

 

 

 

 

 

화성행궁은  위키백과에 의하면 정조가 능원에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 또는 유수가 집무하던 곳으로 활용되던 행궁으로 

정조 13년인 1789년 건립되었다.

567칸으로 정궁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였지만

일제 강점기 때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정책으로 파괴되었고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쳐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친히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가운데 문은 어도로, 임금만 지나갈 수 있다.
신풍루 앞에서는 무예 24기 시범공연도 펼쳐진단다.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옮긴 이후

정조 24년인 1800년 1월까지 12년 간 13차례에 걸쳐 화성에 행차했고,

이때마다 행궁에 머물렀다.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인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었다.

 

 

 

 

대장금 촬영지 였단다.

 

 

 

 

해시계도 있고

 

뒤주도 있다.

뒤주는 곡식 등을 담아 보관하는 생활용기인데

쌀뒤주는 보통 쌀 1~2 가마가 들어가는 크기이며 잡곡 크기는 이보다 작다고 한다.

1762(영조 38)년 에는 정조 임금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까?

 

 

 

 

 

 

행궁 안에 있는 600년 이상된 느티나무는 영목, 신목, 규목이라고 불려 왔으며

이 나무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이 내려온단다.

그래서인지 소원을 적은 종이들이 달려있다. 

 

화성행궁 야간개장은 7월 2일부터 10월 26일까지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궁궐의 밤을 즐길 수 있단다.

 

행궁에서 시장으로 가는 길에 열린 문화공간이 있어서 들어갔다

 

 

우리 눈에 익숙한 풍속 화등이 전시되어 있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재미있는 길을 따라

 

 

 

시장에 다다를 즈음에 술을 따라 주는 정조 상을 만난다.

뒤로는 수원의 시장 이름들이 적혀있다.

시장이 참 많다.

 

'정조는 화성 축성 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회식 자리에서 '불취무귀'라고 하였다.

즉,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불취무귀' 란 말은 실제 취해서 돌아가라고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아직도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군왕으로서의 자책감과 미안함을 토로한 것이었다'라고 쓰여있다

 

시장 구경을 잠깐 하고 유명하다는 도넛 가게에 갔다.

 

 

시장이 많아서인지 가격이 참 착하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먹는 것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지.ㅎㅎ